Docs | Src |  A-  |  A*  |  A+  | -/-

Metadata
sourcehttps://note.com/masakazu_urabe/n/n7815f5b64fab
created2026-09-09
byopenai:gpt-5.6-sol
# 사라진 천재 CTO — 클라우드플레어 기술을 만든 리 홀러웨이 이야기【전편】 **클라우드 서비스 기업 클라우드플레어(Cloudflare)가 급성장한 배경에는 이 회사만의 독창적인 기술이 여럿 있습니다. 애니캐스트(Anycast)와 동일 IP 접속 등이 대표적입니다. 이런 구조를 만든 인물이 CTO이자 공동 창업자인 리 홀러웨이입니다. 그러나 그는 심각한 뇌 질환인 전두측두엽 치매(FTD)로 인해 회사를 떠나야 했습니다. 그가 남긴 기술적 업적과 뒤늦게 밝혀진 질병의 비극을 살펴봅니다. 글·우라베 마사카즈** ## 애플 직원의 가정에서 태어나다 리 홀러웨이(Lee Holloway)는 1981년경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 태어나 실리콘밸리 중심지인 쿠퍼티노에서 자랐습니다. 애플에서 일하던 아버지 덕분에 어린 시절부터 컴퓨터를 접할 기회가 많았고, 자연스럽게 기술과 친숙해졌습니다. 남동생과 함께 빠져든 비디오 게임에서는 탁월한 전략적 사고력을 발휘해 친구들 사이에서 전설적인 실력을 자랑했습니다. 중학교 체스 동아리 대회에 즉석으로 참가해 우승한 일화도 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뛰어난 두뇌와 승부 감각을 지녔음을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 컴퓨터 과학을 공부하다 리는 쿠퍼티노의 명문 공립학교인 몬테비스타 고등학교(Monte Vista High School)를 졸업했습니다. 고등학교 때부터 프로그래밍 재능을 드러냈고, 졸업 후에는 인터넷 산업 초창기의 스타트업인 홈웨어하우스닷컴(HomeWarehouse.com)에서 엔지니어로 일했습니다. 이 회사는 2000년 대형 유통업체 월마트에 인수됐습니다. 당시 젊은 엔지니어였던 리에게 그곳에서 쌓은 경험은 귀중한 자산이 됐습니다. 이후 캘리포니아대학교 샌타크루즈 캠퍼스(UC Santa Cruz)에 진학해 컴퓨터 과학을 전공했습니다. 대학에서 컴퓨터를 본격적으로 공부하며 대규모 시스템 구조를 머릿속에 그려 내는 **공간 지각 능력(空間認識力)**과 **논리적 사고력(論理的思考力)**을 키웠습니다. 리는 대학의 아서 켈러 교수를 통해 젊은 사업가 매슈 프린스(Matthew Prince)를 만났습니다. 매슈는 스팸 방지 소프트웨어 아이디어를 구상하고 있었고, 리의 연구실에서도 비슷한 개념의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매슈는 리 연구진의 성과에 주목했습니다. 특허를 공동 소유하는 방식으로 협력 관계를 맺은 뒤 그 자리에서 리를 채용했습니다. ## 매슈의 집 지하실에서 숙식하다 매슈가 2004년 설립한 스팸 방지 기업 ‘언스팸 테크놀로지스(Unspam Technologies)’는 유타주 파크시티에 거점을 두고 있었으며, 리는 회사의 핵심 구성원이 됐습니다. 그는 매슈의 집 지하실에서 생활하며 급여 대신 식사와 숙소를 제공받았고 소프트웨어 개발에 몰두했습니다. 이후 최고 소프트웨어 아키텍트(Chief Software Architect)를 맡아 말 그대로 회사 소프트웨어의 기반 설계와 구현을 이끌었습니다. 재직 중에는 동료들과 함께 부업 프로젝트로 **‘프로젝트 허니팟(Project Honey Pot)’**을 만들었습니다. 웹상의 스패머와 악성 행위자를 추적하고 데이터를 수집하는 오픈 소스 커뮤니티 프로젝트입니다. 프로젝트 허니팟은 지금도 온라인 사기와 악용 사례를 추적하는 활동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리의 창의성과 기술력이 빛난 대표적인 성과입니다. 2007년 프린스가 하버드 경영대학원에 진학하려고 유타를 떠나자, 리도 캘리포니아로 돌아갔습니다. 이후 대학 시절부터 친구였던 알렉산드라 케어리와 함께 살기 시작했습니다. 매슈 프린스가 MBA 과정을 마칠 무렵, 리에게 다른 회사들의 채용 제안이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매슈는 하버드 동급생 미셸 자틀린(Michelle Zatlyn)과 함께 구상하던 새로운 사업 계획을 리에게 제안했습니다. 훗날 **클라우드플레어(Cloudflare)**로 발전한 아이디어였습니다. “프로젝트 허니팟에서 수집한 스패머 정보를 활용해 위협을 단순히 ‘감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인터넷상의 위협을 ‘차단’하는 서비스를 만들자”는 구상이었습니다. 매슈는 당시 한 시간 동안 사업 구상을 열정적으로 설명했다고 합니다. 이야기를 모두 들은 리는 잠시 침묵한 뒤 “재미있겠네. 해 보자!”라며 그 자리에서 새 사업에 합류하기로 결정했습니다. ## 클라우드플레어 창업과 회사를 떠받친 기술 기반 리 홀러웨이는 클라우드플레어 초창기에 ‘레지던트 지니어스(resident genius)’, 즉 ‘사내 천재’로 불렸습니다. 탁월한 집중력으로 오랜 시간 쉬지 않고 코드를 작성하는 인물로 유명했습니다. ![이미지 1](https://assets.st-note.com/img/1756015704-zgARexqDl1XbcYKE7MkvuZCS.png?width=1200) 2011년. 클라우드플레어 창업 멤버 미셸 자틀린(왼쪽)과 매슈 프린스(오른쪽) 사이에 선 리 홀러웨이 그가 설계한 플랫폼은 클라우드플레어의 성장을 계속해서 뒷받침했습니다. 그의 기술적 비전 또한 오랫동안 회사 서비스의 토대로 이어졌습니다. 리 홀러웨이는 2009년 매슈, 미셸과 함께 클라우드플레어를 창업했고 공동 창업자 겸 수석 엔지니어로서 회사의 기반을 다졌습니다. 매슈와 미셸이 하버드에서 구체화한 사업 계획을 토대로 **클라우드플레어 최초의 프로토타입(Cloudflareの最初のプロトタイプ)**을 개발했으며, 서비스의 핵심 소프트웨어 기반을 구축했습니다. 애니캐스트 네트워크 구현과 셀(Cell) 아키텍처 설계가 대표적입니다. 2010년 세 사람은 신생 기업 경연 대회인 테크크런치 디스럽트(TechCrunch Disrupt)에 참가해 클라우드플레어를 세상에 공개했습니다. 리는 무대에 오르지 않았지만, 발표 당일까지 소프트웨어 오류를 수정하느라 분주하게 움직이며 시연을 성공으로 이끌었습니다. 이후 리는 회사에서 **수석 기술자(主任技術者)**이자 **아키텍트(アーキテクト)**로 활약했으며, 초기 엔지니어팀을 채용하고 이끄는 역할도 맡았습니다. 그의 지휘 아래 구축된 시스템은 확장성이 매우 뛰어났습니다. 클라우드플레어가 인터넷 전체 요청의 약 10% 이상을 처리하고 매일 수십억 건의 사이버 위협을 차단할 수 있게 만든 토대입니다. 2014년에는 엔지니어로서 리의 탁월함을 보여주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모든 웹사이트에 암호화 통신(SSL/TLS)을 무료로 제공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던 때였습니다. 마감 전날부터 그는 후드를 뒤집어쓰고 헤드폰으로 음악을 들으며 누구도 말을 걸 수 없을 만큼 깊이 집중했습니다. 그리고 하룻밤 만에 코드를 완성했습니다. 덕분에 클라우드플레어의 모든 고객에게 예정대로 무료 암호화 통신을 제공할 수 있었습니다. 인터넷에서 암호화된 웹 통신량이 하룻밤 사이 두 배로 뛰었다는 보고도 나왔습니다. ## 리에게 나타난 이상 징후, 전두측두엽 치매의 발병 순탄해 보이던 리의 경력에는 2010년대 초반부터 이상 징후가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2011년경 당시 서른 살 안팎이었던 그는 극심한 피로를 느꼈습니다.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자마자 바닥에 쓰러져 잠드는 날이 늘었습니다. 사교적이던 성격에도 그늘이 드리웠고, 동료들의 초대나 행사에도 모습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집에서도 어린 아들과 놀아 주지 않는 등 무기력한 태도가 두드러지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 아내 알렉산드라와 주변 사람들은 단순히 마음의 거리가 멀어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대학 시절부터 함께한 첫 번째 아내 알렉산드라는 상담도 권했지만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2012년 알렉산드라가 어린 아들을 데리고 잠시 별거하기로 하자, 리는 아무렇지도 않게 이혼 서류를 제출하라고 요구했습니다. 그렇게 결혼 생활은 끝났습니다. 동료들은 “성공해 경제적 여유가 생기면서 이기적으로 변한 것 같다”고 받아들였습니다. 그러나 이해하기 어려웠던 이러한 행동 변화야말로 훗날 밝혀질 질병의 징후였습니다. 이후 리는 클라우드플레어에서 커뮤니케이션을 담당하던 크리스틴 타르(Kristin Tarr)와 가까워졌습니다. 2014년에는 로마 여행 중 청혼하고 재혼했습니다. 결혼 생활은 순조로워 보였지만 2015년 초, 지병을 치료하는 과정에서 전환점이 찾아왔습니다. 리는 선천적으로 **대동맥판 역류(大動脈弁の逆流)**라는 심장 질환을 앓고 있었고, 이것이 두통의 원인일 가능성이 제기됐습니다. 스탠퍼드대학교병원 의사의 권유에 따라 그는 2015년 1월 6시간에 걸친 심장 수술을 받았습니다. 수술은 성공해 심장 상태가 좋아졌지만, 이 수술을 기점으로 홀러웨이의 정신 상태가 눈에 띄게 달라졌습니다. 직장에 복귀한 뒤에도 리는 줄곧 기운이 없었고 과거의 열정과 카리스마도 사라졌습니다. 결혼식을 앞두고 하와이에서 열린 행사에서도 줄곧 넋이 나간 듯했습니다. 아내 크리스틴은 한때 풍성했던 그의 인간적 면모가 빛을 잃은 것 같다고 느꼈습니다. 직장에서는 회의 중 스마트폰 게임을 하거나, 다른 사람이 말해도 반응하지 않거나, 동료의 제안에 완강히 반대하기 시작했습니다. **예전과는 전혀 다른 사람처럼(以前とは別人のような)** 행동한 것입니다. 매슈와 미셸도 여러 차례 면담하며 개선을 촉구했지만 아무런 효과가 없었습니다. 매슈는 공동 창업자가 눈앞에서 변해 가는 모습을 보며 “가장 친한 친구를 잃어 가는 듯한 엄청난 불안”을 느꼈다고 회상했습니다. 결국 2016년이 되자 리가 계속 회사에서 근무하기는 어렵다는 판단이 내려졌고, **회사를 떠나기로(会社を去る決断)** 했습니다. 매슈가 전 직원 회의에서 눈물을 흘리며 작별 연설을 하는 동안, 리는 맥주병을 든 채 희미하게 웃으며 서 있었다고 합니다. 회사에 인생을 바친 그가 36세에 클라우드플레어를 떠난다는 소식에 회사 안팎의 많은 사람이 충격을 받았습니다. 퇴사 후 리는 크리스틴과의 사이에서 태어날 둘째 아이를 돌보기 위해 **전업주부(専業主夫)**가 될 계획이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이상 행동은 가정에서도 점점 심해졌습니다. 아내의 출산이 시작됐을 때도 병원에서 진통을 겪는 아내 곁에서 오랫동안 잠만 잤습니다. 잠에서 깨어난 뒤에는 무통 분만 처치에 반대하며 의사와 말다툼을 벌였다고 합니다. 갓 태어난 아기에게도 관심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한밤중에 혼자 영화 《나 홀로 집에》를 몇 번이나 되풀이해 보거나, 하루 종일 비니를 깊이 눌러쓴 채 집 안을 돌아다니는 등 명백히 비정상적인 행동이 자주 나타났습니다. 위기감을 느낀 크리스틴은 남편을 끌다시피 하며 여러 병원에 데려갔습니다. 그러나 아내의 필사적인 노력에도 리는 아무런 표정 없이 “나아질게”라는 말만 반복했습니다. 대화도 점차 통하지 않았습니다. 주변 사람들은 처음에 심장 수술의 후유증이나 번아웃 증후군, 우울증 등을 의심했습니다. 그러던 2017년 3월, 뇌신경 전문의의 검사에서 믿기 어려운 결과가 나왔습니다. 리의 뇌가 **위축(萎縮)**돼 있었던 것입니다. MRI에 찍힌 홀러웨이의 뇌는 나이에 비해 지나치게 위축돼 있었습니다. 의사는 가족에게 “신경퇴행성 질환일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습니다. 소개를 받아 방문한 캘리포니아대학교 샌프란시스코 캠퍼스(UCSF) 기억·노화 센터에서는 더욱 정밀한 검사와 면담이 진행됐습니다. 의료진이 내린 진단은 **‘행동변이형 전두측두엽 치매(bvFTD, 行動変異型前頭側頭型認知症)’**였습니다. 불과 36세에 발병한 조기 발병 치매의 한 종류라는 충격적인 소식에 아내 크리스틴과 부모, 남동생은 무너졌습니다. 전두측두엽 치매는 알츠하이머병과 달리 기억 장애보다 성격과 행동의 변화가 두드러지는 질환입니다. 주로 50∼60대에 발병합니다. 근본적인 치료법은 없습니다. 의사는 증상이 계속 진행돼 점차 대화할 수 없게 되고, 걷기도 어려워지며, 삼키는 기능까지 잃을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결국 감염이나 사고 등으로 생명이 위험해질 가능성도 크다고 했습니다. 화면에 나타난 리의 뇌 단면 곳곳에서는 원래 전두엽의 회백질이 있어야 할 자리가 검게 비어 있었습니다. 그 자리에 있던 가족들은 말을 잃었다고 합니다. 사형 선고와도 같은 진단을 정작 홀러웨이 자신은 차분하게 받아들였습니다. 눈물을 흘리는 가족 옆에서 담당 의사의 결혼반지를 칭찬하는 등 마치 남의 일처럼 행동했다고 전해집니다. 가족이 알던 리는 더 이상 그곳에 없었습니다. 질병이 만들어 낸 전혀 다른 사람이 됐음을 절감하게 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진단 후 크리스틴은 직장을 그만두고 남편과 최대한 많은 시간을 보내려 했습니다.[와이어드](https://www.wired.com/story/lee-holloway-devastating-decline-brilliant-young-coder/#:~:text=She%20remembers%20sitting%20with%20her,her%20job%20the%20next%20day) 그러나 병은 가차 없이 진행됐습니다. 2017년 여름에는 홀러웨이의 판단력이 더 떨어져 가족조차 한시도 눈을 뗄 수 없었습니다. 한밤중에 큰 소리로 뮤직비디오를 계속 틀거나 밤새 집 안을 돌아다니는 행동을 통제할 수 없었습니다. 말하는 능력도 서서히 사라졌습니다. 2018년경에는 “클라우드플레어에서 만났다”, “로마에서 약혼했다”, “마우이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등 자신의 인생에서 일어난 일을 기계적으로 끝없이 되풀이했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그가 내뱉는 말은 의미 없는 숫자와 문자의 나열로 변했습니다. 2019년에는 정상적인 대화가 완전히 불가능해졌습니다. 감정 표현도 사라졌고 전화 한 통조차 걸 수 없었습니다. 어머니 캐시는 한때 자신을 사랑스럽게 안으며 “엄마, 사랑해요”라고 말하던 아들의 모습을 떠올렸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아들에게서 그 말을 다시 들을 수 없다”며 눈물을 흘렸다고 합니다. ## 미국 언론의 반응 리의 파란만장한 삶과 기술적 위업, 갑작스럽게 그를 덮친 비극에 미국 언론도 큰 관심을 보였습니다. 2020년 미국판 《와이어드》에는 ‘젊은 천재 프로그래머의 파괴적인 쇠퇴’(원제: The Devastating Decline of a Brilliant Young Coder)라는 제목의 특집 기사가 실렸습니다. 클라우드플레어의 ‘천재’로서 기술 기반을 구축한 홀러웨이가 점차 무기력하고 예측할 수 없는 언행을 보이기 시작했지만 아무도 그 이유를 알지 못했던 과정이 상세히 보도됐습니다. 《와이어드》의 선임 편집자 샌드라 업슨은 “리의 성격은 수십 년간 한결같았다. 바로 그날까지는”이라고 썼습니다. 리에게 일어난 성격 변화와 그 원인을 밝히려고 가족이 고군분투한 세월, FTD라는 질병이 당사자와 주변 사람들의 삶을 어떻게 뒤흔들었는지를 세밀하게 그렸습니다. 이 특집은 큰 반향을 일으켰고, 리의 이름은 기술 업계 밖에서도 널리 알려졌습니다. 기사를 통해 FTD라는 질병 자체의 인지도도 높아졌습니다. “한창 일할 나이에도 치매가 생길 수 있다”는 사실은 많은 독자에게 충격을 줬습니다. 한편 리가 남긴 기술적 공헌에 대한 찬사와 감사도 여러 곳에서 이어졌습니다. 클라우드플레어는 2019년 기업공개(IPO)에 나섰습니다. 공개된 IPO 투자설명서에서 공동 창업자인 매슈와 미셸은 “세 번째 공동 창업자인 리 홀러웨이는 플랫폼을 설계하고 초기 기술팀을 이끈 천재”라고 명시했습니다. 또한 “그가 내린 기술적 결정과 그가 성장시킨 엔지니어팀이 현재 사업의 토대”라고 밝혔습니다. 사내에서 IPO 준비 프로젝트의 코드명을 정할 때도 그의 공헌을 기리는 뜻에서 **‘프로젝트 홀러웨이(Project Holloway)’**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기술 뉴스 사이트 테크크런치도 IPO 당시 ‘클라우드플레어에는 세 번째 공동 창업자가 있다’라는 제목으로 그를 소개했습니다. “리 홀러웨이는 2016년 신경계 질환인 FTD 증상으로 회사를 떠났지만, 클라우드플레어를 오늘날의 모습으로 만든 주역”이라고 보도했습니다. 이처럼 언론은 그의 업적과 질병과의 싸움을 널리 알렸습니다. 독자들도 “가슴 깊이 와닿았다”, “천재 프로그래머의 비극에 마음이 아프다”는 반응을 쏟아냈습니다. 리와 가족도 이 질병에 맞서는 공동체에 기여하기 시작했습니다. 2019년 아내 크리스틴과 리의 부모는 FTD 지원 단체인 전두측두엽변성협회(AFTD) 안에 **리 홀러웨이를 기리는 도움과 희망의 홀러웨이 기금(The Holloway Fund for Help and Hope in Honor of Lee Holloway)**을 설립했습니다. 기부금의 50%는 환자와 가족을 위한 지원 프로그램에, 나머지 50%는 FTD 연구에 쓰기로 했습니다. ![이미지 2](https://assets.st-note.com/img/1756018951-SHLY5z3TflAqsZ1jQcXoOIyg.png) AFTD 이사로도 활동하는 크리스틴 홀러웨이 기금의 활동과 AFTD 이사로서 크리스틴이 펼치는 적극적인 노력 덕분에 리의 사례는 FTD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상징적인 사례가 됐습니다. 여러 언론과 전문가 회의에서도 이를 다루고 있습니다. 2020년 이후에는 홀러웨이의 이름을 딴 ‘홀러웨이 서밋(Holloway Summit)’이라는 FTD 연구자 연례 회의도 열리고 있습니다. 이 자리에서는 질병의 원인 규명과 치료법 개발을 위한 논의가 이뤄집니다. 이러한 사회적 움직임 덕분에 그의 개인사는 단순한 비극으로만 남지 않았습니다. 미래의 환자를 구할 희망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후편에서 계속 > 후편에서는 다음 기술도 살펴봅니다. > > **리 홀러웨이가 클라우드플레어에 남긴 기술적 업적(リーホロウエイがCloudflareに残した技術的功績)** > > 1. 애니캐스트 네트워크 구현과 철저한 최적화 > > 2. ‘셀(Cell) 아키텍처’ 설계 > > 3. 성능과 보안을 아우르는 통합 기반 > > 4. 코드 품질과 시스템 구축 능력 **자료(資料):** [와이어드](https://www.wired.com/story/lee-holloway-devastating-decline-brilliant-young-coder/#:~:text=considering%20other%20job%20offers,defect%20employee%20was%20his%20top) [AFTD](https://www.theaftd.org/posts/front-page/cloudflare-co-founder-who-is-living-with-ftd-profiled-in-wired/#:~:text=In%20March%202017%2C%20the%20Holloways,in%20a%20diagnosis%20of%20bvFTD) [테크크런치](https://techcrunch.com/2019/08/15/cloudflare-has-a-third-cofounder-lee-holloway-whos-credited-with-making-the-company-what-is-today/#:~:text=That%E2%80%99s%20none%20too%20shabby%20for,%E2%80%9D) [롱리즈](https://longreads.com/2020/04/15/genius-interrupted/#:~:text=girl%2C%E2%80%9D%20Prince%20says,%E2%80%9D) 클라우드플레어 블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