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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즈웰의 72시간
*4부작 중 1부(Part One of Four) | [로즈웰 시리즈](https://www.gottabekidding.me/what-roswell-knows)*
1947년 7월 8일 아침, 미 육군은 비행접시를 회수했다고 발표했다.
그날 저녁, 그 발표는 없던 일이 됐다.
그 사이에, 그리고 그보다 앞선 9일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미국 제도권 역사에서 가장 문서가 많이 남은 ‘설명 아닌 설명’ 가운데 하나다. 증거가 어느 한쪽을 또렷이 가리키기 때문이 아니다. 공식 기록 자체가 충분히 이상하기 때문이다.
## 모든 것이 하늘을 날던 여름
이야기는 6주 전, 북서쪽으로 1,200마일 떨어진 곳에서 시작해야 한다.
1947년 6월 24일, 케네스 아널드(Kenneth Arnold)라는 민간 조종사가 워싱턴주 레이니어산 근처를 비행하고 있었다. 그때 그는 초승달 모양 물체 9개가 대형을 이뤄 시속 약 1,200마일로 움직이는 모습을 목격했다. 그는 그 움직임을 물 위를 튀어 가는 접시 같다고 설명했다. 그러자 신문 제목을 뽑던 사람들이 이후 사라지지 않을 표현 하나를 만들어 냈다. 7월 초가 되자 “비행접시(flying saucer)” 목격담이 41개 주에서 쏟아졌다. 매일 수백 건의 목격담이 신문사, 경찰서, 군 시설로 밀려들었다.
“비행접시(flying saucer)”라는 말이 만들어지며 불붙은 열풍은 중요하다. 한 목장 관리인이 발견한 잔해가 몇 시간 만에 어떻게 세계적 화제가 됐는지 설명해 주기 때문이다. 불쏘시개는 이미 쌓여 있었다. [아널드가 육군항공대에 제출한 최초 보고서는 미국 국립문서기록관리청에 보관돼 있다. 그 보고서가 촉발한 언론 열풍은 프로젝트 블루북 특별 보고서 14호와 당시 통신사 보도에 광범위하게 기록돼 있다.](https://en.wikipedia.org/wiki/1947_flying_disc_craze?ref=gottabekidding.me)
## 라디오가 없던 남자
아널드의 목격담이 지면에 실리기도 열흘 전인 1947년 6월 14일, 윌리엄 W. “맥” 브레이즐(William W. “Mac” Brazel)은 뉴멕시코주 코로나 근처 J.B. 포스터 목장을 돌보고 있었다. 로즈웰에서 북서쪽으로 약 75마일 떨어진 곳이었다. 그는 넓게 흩어진 잔해 더미를 발견했다. 잘게 찢긴 금속처럼 보이는 물질, 검은 고무 조각, 막대, 그리고 그가 질긴 종이 같은 물질이라고 설명한 것들이었다. 근처 땅에는 얕은 도랑이 패여 있었다. 브레이즐은 이를 눈여겨봤지만 그대로 일을 계속했고,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그에게는 전화가 없었다. 라디오도 없었다. 자기 나라 전체가 하늘에서 떨어지는 물체에 집단적으로 사로잡히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알 방법이 없었다.
3주가 지났다. 7월 5일, 브레이즐은 물자를 사러 코로나로 차를 몰고 갔다가 처음으로 비행접시 소식을 들었다. 그는 목장으로 돌아가 물질 일부를 챙겼다. 그리고 7월 6일 또는 7일, 기록마다 다르지만, 로즈웰로 가서 조지 윌콕스(George Wilcox) 보안관 사무실에 들렀다. 그는 샘플을 가져왔고, 나중에 설명한 표현대로 “좀 은밀하게(kinda confidential like)” 자신이 비행 원반을 발견했을지도 모른다고 속삭였다. 윌콕스는 로즈웰 육군 비행장에 연락했다. [브레이즐이 직접 밝힌 발견 경위와 일정은 1947년 7월 9일 자 *로즈웰 데일리 레코드(Roswell Daily Record)*에 기록돼 있다.](https://en.wikisource.org/wiki/Gen._Ramey_Empties_Roswell_Saucer?ref=gottabekidding.me)
## 정보장교와 그의 아들
제509폭격전대 정보장교 제시 마셀(Jesse Marcel) 소령은 보안관 사무실로 차를 몰고 가 잔해 샘플을 살폈다. 그는 육군 방첩대 셰리던 캐빗(Sheridan Cavitt) 대위와 함께 직접 포스터 목장에 가기로 했다. 두 사람은 도착 시간이 너무 늦어 제대로 수색하지 못했고, 그날 밤을 목장에서 보냈다.
다음 날 아침 돌아오는 길에 마셀은 수십 년 동안 메아리칠 행동을 했다. 그는 한밤중에 자기 집 앞에 차를 세우고 열 살 아들 제시 주니어를 깨워 차 안에 있던 물건을 보여 줬다. 훗날 의사가 된 그 아들은 자신의 증언을 한 번도 바꾸지 않았다. 이상한 표식이 있는 금속 빔 또는 지지대, 구겨도 구겨진 상태로 남지 않는 포일이었다는 것이다. 그의 아버지는 눈에 띄게 흥분해 있었다. 마셀은 잔해를 윌리엄 블랜처드(William Blanchard) 대령에게 전달했다. 브리핑을 받은 블랜처드는 공보장교에게 성명을 준비하라고 지시했다.
## 7월 8일: 이야기가 세 번 바뀐 날
중부시간 오후 3시 26분쯤, 월터 하우트(Walter Haut) 중위의 보도자료가 통신망을 탔다. 육군의 표현은 모호하지 않았다. 제509폭격전대 정보실이 지역 목장에서 회수한 비행 원반을 확보했다는 내용이었다. 라디오 방송국 KGFL과 KSWS는 즉시 이 소식을 보도했다. AP통신은 전국으로 타전했다. KSWS 국장 조지 월시(George Walsh)는 나중에 전 세계에서 언론 문의 전화가 빗발쳤다고 회상했다. 그는 후속 논평을 듣기 위해 윌콕스 보안관에게 연락하려 했지만 끝내 닿지 못했다.
그날 오후, *로즈웰 데일리 레코드(Roswell Daily Record)*는 이후 상징적 문구가 된 제목으로 이 소식을 1면에 실었다. “로즈웰 지역 목장에서 RAAF, 비행접시 회수(RAAF Captures Flying Saucer on Ranch in Roswell Region).” [보도자료 전문은 GAO의 1995년 기록 보고서와 위키소스에 보존돼 있다.](https://en.wikisource.org/wiki/RAAF_Captures_Flying_Saucer_On_Ranch_In_Roswell_Region?ref=gottabekidding.me)
그 이야기는 나온 지 대략 네 시간 만에 해체되기 시작했다.
블랜처드의 상관인 포트워스 육군 비행장의 로저 레이미(Roger Ramey) 준장은 기자회견을 열었다. *포트워스 스타-텔레그램(Fort Worth Star-Telegram)* 사진기자 제임스 본드 존슨(James Bond Johnson)이 레이미의 사무실에 도착했을 때, 바닥에는 물질이 펼쳐져 있었다. 포일, 막대, 고무 같은 조각들이었다. 그는 그것에서 탄 고무 냄새가 났다고 기억했다. 기상장교 어빙 뉴턴(Irving Newton) 준위는 그 자리에서 그것을 레이더 반사기가 달린 고고도 기상 관측 기구라고 식별했다. 레이미는 모인 기자들에게 육군이 착각했다고 말했다. 통신사들은 기사를 갱신했다. 전국적 서사는 방향을 틀었다.
그날 오후 존슨이 찍은 사진 중 하나에는 레이미가 접힌 문서를 들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지금은 “레이미 메모(Ramey memo)”라고 불리는 문서다. 텍사스대학교 알링턴 도서관의 프로젝트를 비롯해 수십 년 동안 포렌식 분석과 디지털화 작업이 이어졌지만, 그 내용에 대해 합의된 판독은 나오지 않았다. 이 메모는 공식적으로 여전히 해독되지 않은 상태다.
그다음에는 텔레타이프가 있었다.
같은 날 저녁, FBI 댈러스 현장사무소는 J. 에드거 후버(J. Edgar Hoover) 국장에게 긴급 메시지를 보냈다. 제8공군 정보장교가 회수 사실을 설명하려고 전화를 걸어 왔다는 내용이었다. 그는 그 물체가 레이더 반사기가 달린 고고도 기상 관측 기구와 닮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중요한 단서를 덧붙였다. 자기 사무소와 라이트 필드(Wright Field) 사이의 전화 통화가 “이 판단을 뒷받침하지 못했다(had NOT borne out this belief)”는 것이다. 원반과 기구는 검사를 위해 특별기로 라이트 필드로 이송되고 있었다. [FBI 댈러스 텔레타이프 전문은 FBI 볼트의 정보공개법 공개 자료에서 볼 수 있다.](https://vault.fbi.gov/Roswell%20UFO?ref=gottabekidding.me)
이 대목을 천천히 다시 읽어 보라. 육군은 공개 기자회견에서 “기상 관측 기구(weather balloon)”라고 말하고 있었다. 동시에 FBI에는 라이트 필드가 그 설명을 확인해 주지 못했다고 전하고 있었다. 두 일 모두 1947년 7월 8일에 벌어졌다. 둘 다 문서 기록에 남아 있다. 같은 날에 말이다.
## 7월 9일: 목장주가 말하다
다음 날 아침 *로즈웰 데일리 레코드(Roswell Daily Record)* 1면에는 기사 두 건이 실렸다. 첫 번째 기사 “레이미 장군, 로즈웰 접시를 비우다(Gen. Ramey Empties Roswell Saucer)”는 공식 번복을 보도했다. 두 번째 기사는 브레이즐 본인과의 인터뷰였다. 그는 자신이 발견한 것을 설명했다. 고무 조각, 은박지, 질긴 종이, 막대였다. 엔진 부품은 없었다. 눈에 띄는 금속도 없었다. 모두 묶었을 때 전체 무게는 약 5파운드였다.
그는 기상 관측 기구라는 설명을 설득력 있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신문에 실린 그의 말은 이렇다. “내가 발견한 것이 어떤 기상 관측 기구도 아니었다고 확신한다.”
연구자들은 이 인용문에 담긴 긴장을 수십 년 동안 검토해 왔다. 그는 상상 가능한 가장 평범한 물질들의 조합을 설명하면서도, 가장 평범한 설명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어떤 이들은 브레이즐이 자신의 진술을 철회하도록 압박받았다고 주장한다. 다른 이들은 그의 설명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그것이 프로젝트 모굴(Project Mogul)의 잔해와 완전히 들어맞는다고 지적한다. 기록은 어느 쪽으로도 결론을 내리지 않는다.
전국 언론은 대체로 육군의 설명을 받아들이고 넘어갔다. *오클랜드 트리뷴(Oakland Tribune)*은 “쇼는 끝난 것처럼 보인다”고 썼다.
## 7월 10일: 시연
보도자료가 나온 지 이틀 뒤, 앨라모고도 육군 비행장의 군 관계자들은 기자들을 위한 시연을 열었다. 장교 네 명이 기자들에게 기구 구성과 레이더 표적 장비를 차례로 설명했다. 모두 전년도 내내 수행된 통상적인 기상 업무라는 설명이었다. 훗날 공군의 1994년 자체 보고서는 이 시연을 그 장비가 실제로 속해 있던 기밀 프로젝트에서 “주의를 돌리려는 시도(an attempt to deflect attention)”였다고 평가했다. 그 프로젝트는 모굴이라는 암호명으로 불렸으며, 고고도에서 소련 핵실험의 음향 신호를 탐지하기 위해 설계됐다. 이 프로젝트는 그 뒤로 47년 동안 공개적으로 인정되지 않았다.
누가 보아도 이야기는 끝난 듯했다. 통신 보도에서 철회까지 72시간이 걸렸다.
## GAO가 찾아낸 것과 찾아내지 못한 것
1994년, 뉴멕시코주 하원의원 스티븐 시프(Steven Schiff)는 정부회계감사원(GAO)에 로즈웰 사건 관련 연방 기록을 포괄적으로 조사해 달라고 요청했다. GAO의 1995년 보고서가 확인한 1947년 정부 문서는 정확히 두 건뿐이었다. FBI 댈러스 텔레타이프, 그리고 제509폭격전대의 7월 월간 부대사였다. 부대사에는 “레이더 추적 기구로 밝혀진” 물체의 회수가 별다를 것 없는 한 문장으로 언급돼 있었다.
1945년 3월부터 1949년 12월까지의 로즈웰 육군 비행장 행정 기록은 사라져 있었다. 사건 전후 전체 기간을 포괄하는 기록이었다. 폐기된 것이다. GAO 보고서는 그 기록들이 폐기됐지만 날짜가 기록돼 있지 않고, 승인한 담당자도 확인되지 않으며, 이유도 명시돼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GAO의 전체 조사 결과는 GovInfo.gov에서 볼 수 있다.](https://www.govinfo.gov/content/pkg/GAOREPORTS-NSIAD-95-187/html/GAOREPORTS-NSIAD-95-187.htm?ref=gottabekidding.me)
이것이 공식 문서 흔적의 전부다. 밋밋한 부대사 항목 하나, 공개 설명을 조용히 흔드는 FBI 텔레타이프 하나, 그리고 사건 전체와 그 여파를 포함하는 기지 기록의 4년 공백이다.
## 침묵이 시작되다
레이미의 기자회견 직후 이야기는 거의 곧바로 식어 버렸다. 전국 보도는 사라졌다. 31년 동안 로즈웰은 각주에 머물렀다. 전시 시대의 쉽게 믿는 풍조가 빚은 잠깐의 민망한 사건, 그리고 육군이 능숙하게 설명해 버린 일로 남았다.
그러다 1978년, 은퇴한 공군 정보장교 제시 마셀이 핵물리학자이자 UFO 연구자인 스탠턴 프리드먼(Stanton Friedman)의 인터뷰에 응했다. 마셀은 처음으로 공개적으로 말했다. 기상 관측 기구라는 식별은 은폐용 이야기였고, 자신이 포스터 목장에서 회수한 것은 군 경력 동안 한 번도 본 적 없는 것이었다고 했다.
그의 아들은 여러 해 전부터 같은 말을 해 오고 있었다.
그 인터뷰는 사건을 다시 열어젖혔다. 그 주변에서 자라난 것들, 곧 신화, 관련 산업, 의회 청문회, 경쟁하는 이론들은 또 다른 이야기다. 그것은 2부에서 다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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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침묵(The Long Silence, 1948–1978)**에서는 로즈웰 이야기가 사라져 있던 30년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리고 단 한 번의 인터뷰가 어떻게 그 이야기를 되살렸는지 추적한다.*